그 해 우리는은 고등학교 시절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만난 두 남녀가 성인이 된 후 다시 재회하며, 오래된 감정과 상처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지나간 사랑의 회복이라는 전형적인 설정 안에서도 섬세한 연출, 현실적인 감정선,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서사로 큰 공감을 끌어냈다. 성장의 과정에서 어긋났던 마음이 시간이 흘러 다시 닿아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주며, 사랑이란 무엇이고 함께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조용히 묻는다.
1. 기억은 흐르지만 감정은 남는다
그 해 우리는은 한 편의 감성 에세이처럼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진심이던 엄청난 모범생 국연수와 모든 것에 무기력한 듯 보였던 최웅은 정반대였기에 서로에게 끌렸다. 그리고 둘은 연인이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릴 적 사랑은 어떤 감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 끝나게 마련이다. 연수와 웅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좋아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를 몰랐고, 결국 이별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그들은 우연히 다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통해 재회하게 되고, 그 순간,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천천히 다시 떠오른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감정을 쉽게 소비하거나 과장하지 않는 데 있다. 눈물이 나야 할 장면에서도 울지 않고, 고백이 오갈 타이밍에서도 침묵을 택한다. 하지만 바로 그 침묵과 시선, 천천히 걷는 거리, 늦은 밤에 홀로 마시는 술 한잔 속에서 이들이 아직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전달된다. 시청자는 두 사람의 재회를 바라보며 그들의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 잊힌 감정, 그리고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함께 되새기게 된다.
2. 다시 시작된 관계, 그 어색하고 따뜻한 거리
두 주인공의 재회는 단순한 감정의 회복이 아니다. 그 사이 각자의 삶은 많이 바뀌었고,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연수는 성공한 PR 전문가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웅은 일러스트 작가로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다시 만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게 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더 어색하고 더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서로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고, 그 감정을 다시 꺼내는 것이 과거를 들추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급하게 몰고 가지 않는다. 상처를 준 쪽, 상처를 받았던 쪽 모두의 입장을 차분히 설명하며 누구의 잘못이라는 이분법을 지양한다. 특히 연수가 왜 이별을 택했는지, 웅이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마치 현실에서 있었던 연애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고 납득 가능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 드라마가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을 로맨틱한 사건;이 아니라 용기 있는 감정 회복으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연수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웅은 상처를 인정하고, 둘은 아주 조금씩 상대를 다시 신뢰하기 시작한다. 그 어색한 대화와 서툰 행동 속에서 두 사람은 다시 가까워지고,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이 모든 과정이 극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호흡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더욱 진하게 공감하게 된다.
3. 사랑은 때로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다
그 해 우리는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안한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용서도 아니고, 조건 없는 기다림도 아니다. 사랑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각자의 속도로 다시 다가가는 과정이다. 드라마 후반부, 두 사람은 다시 연인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간다. 이 드라마는 사랑이란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꺼내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그 시절 우리가 몰랐던 것들을 이제야 알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알게 된 것을 토대로 진짜 어른으로서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시청자는 이들의 변화를 보며 지나간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의 감정, 혹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에 조용히 용기를 얻게 된다.그 해 우리는은 달달한 사랑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관계의 본질과 사람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붙잡는 따뜻한 드라마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