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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쩐, 자본의 끝에서 법을 묻다

by lotsofmoneys 2025. 7. 14.

to ask the law at the end of one's capital

SBS 드라마 《법쩐》은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며, 돈과 법, 정의와 복수의 복잡한 경계를 정면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 대기업, 정치권, 검찰, 정보기관까지 얽힌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분노와 정의는 극적인 액션이 아닌 치밀한 심리전과 법적 공방을 통해 펼쳐지며, 결말에 이르러 진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복합적인 질문을 남긴다. 이 드라마는 권력의 뒷면을 들여다보는 창이며, 그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자들의 이야기다.

1. 돈이 만든 권력, 법은 누구의 것인가

《법쩐》의 서사는 재벌과 권력층, 그리고 그들을 견제해야 할 법조계와 정보기관이 모두 뒤엉켜 만들어낸 '공모의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은용(이선균 분)은 조폭 출신 금융업자로, 형을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고 간 권력과 자본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돌아온다. 그의 복수는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서, 정의로 포장된 사회 시스템 전체에 대한 통렬한 반격으로 확장된다. 그와 맞서는 인물은 재벌가 사모 임상희(김홍파 분), 검찰 고위직, 국정원 인사 등 사회적 권력을 상징하는 다양한 실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악용하고, 정보를 조작하며, 심지어 사람의 목숨까지 거래한다. 《법쩐》은 그 과정에서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진다. 특히 드라마가 보여주는 금융범죄, 검찰 내부의 유착, 정경유착의 구체적 묘사는 현실 속 불신과 두려움을 반영한다. 드라마는 허구이지만, 시청자는 결코 그것을 허구로 느낄 수 없는 이유다.

2. 복수는 정의가 될 수 있는가

은용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도 아니다. 그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방식으로 적을 무너뜨리며, 필요하다면 불법적 방법조차 서슴지 않는다. 그의 방식은 전형적인 복수극의 영웅이라기보다는, 시스템 속에서 버림받은 자가 선택한 마지막 수단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가 그의 복수를 무조건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용이 손에 쥔 정보는 칼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검찰 출신 준경(문채원 분)은 법을 지키는 입장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은용의 방식에 동조하게 된다. 이 과정은 시청자에게 정의는 반드시 합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무지개를 쫓기보다는 불꽃을 삼킨 자들의 이야기인 《법쩐》은 결국 복수와 정의, 진실과 이익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선악의 경계는 흐릿하고, 법과 돈의 교차점은 언제나 타협의 위험에 노출된다. 숨겨진 해설로 주목할 부분은, 드라마 내내 반복되는 정보의 권력이다. 은용은 힘이 아니라 정보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는 오늘날 법조계, 재벌, 정치권 모두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진실이 아니라 통제된 정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결말과 숨겨진 메시지, 패배처럼 보이는 승리

《법쩐》의 결말은 통쾌한 복수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은용은 자신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정보를 폭로하며 판을 뒤엎는다. 결과적으로 주요 악인들이 몰락하지만, 그의 방식은 끝내 제도 밖에 머문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임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진짜 메시지는 승리에 있지 않고,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자세에 있다는 것이다. 준경은 결국 다시 공권력 안으로 돌아가고, 은용은 여전히 그 경계에 남는다. 이 대비는 법은 정해진 대로만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누가 시스템 바깥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법쩐》은 자극적인 스릴러가 아니라, 현대 사회 시스템의 균열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드라마다. 그 속의 숨겨진 의미는, 정의란 완성형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이며, 우리는 언제나 그 과정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