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단순한 성장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이 작품은 현대 자본주의와 인간 소외, 정체성 상실이라는 복합적 테마를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미지 속에 풀어낸다. 주인공 치히로가 ‘센’이라는 타인화된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서 자아를 잃고, 다시 자신의 이름을 되찾으며 현실로 복귀하는 여정은 곧 인간의 본성과 자율성, 그리고 성장에 대한 우화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어디서 오는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1. 판타지의 형식을 빌린 현대 사회의 거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이가 이계(異界)로 들어가 정체성을 되찾고 돌아오는 전통적인 판타지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치히로의 성장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야자키 감독은 철저히 현대 일본 사회에 대한 우화를 이 판타지의 형식으로 감추어 놓는다. 영화 초반, 치히로의 부모는 무단으로 음식에 손을 댔다가 돼지로 변한다. 이 장면은 1990년대 일본 버블경제 붕괴 이후 과소비와 탐욕의 대가를 지적하는 상징적 서사로 해석된다. 치히로는 그 대가를 홀로 감당해야 하며,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타인의 이름을 부여받는다. 이 장면은 곧 개인의 자율성이 상실되고 시스템에 편입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름을 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유바바의 말은 곧 자아와 기억, 그리고 자유의지를 잃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끝없는 욕망의 상징인 가오나시, 환경오염의 메타포인 강의 신, 철저히 노동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목욕탕 세계 등은 모두 현실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압축해 놓은 장치들이다.
2. 자본, 욕망, 그리고 이름을 둘러싼 상징 구조
이름은 이 작품 전체를 꿰뚫는 핵심 모티프다. 유바바는 자신의 욕망과 권력 유지를 위해 모든 직원의 이름을 바꾼다. 이름을 잊는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고, 타인의 소유물이 되는 것과 같다. 치히로가 센이라는 이름을 받는 순간, 그녀는 유바바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조건은 자율성을 잃는다는 딜레마를 안겨준다. 이 작품에서 이름을 되찾는 여정은 곧 자기 회복의 서사다. 하쿠 역시 본래 이름을 잃었으며, 그가 자신이 강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진정한 자아를 회복한다. 가오나시는 인간과 유사한 욕망을 지닌 존재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치히로의 호의에 매달리지만, 자본과 물질이 넘쳐나는 공간에서는 점차 탐욕스러운 괴물로 변모한다. 그가 금을 뱉고 식탐에 물들어가는 과정은 욕망이 통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장면이다. 결국 치히로는 물질적 보상이나 권력을 좇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는 진정한 주체는 외부적 권위나 시스템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주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치히로는 누구의 소유물도 되지 않고,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3. 귀환의 의미, 그리고 인간됨에 대한 회복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마지막은 분명 귀환이다. 치히로는 부모를 되찾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귀환은 출발점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자아를 회복한 다른 치히로의 탄생을 의미한다. 현실과 이계를 가르는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사실 치히로가 겪은 모든 사건은 상징일 뿐이며,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에 따라 세계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성장이란 외적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아니라, 외부 세계의 속임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른들을 위한 우화이기도 하다. 이름을 잊고, 욕망을 따르고, 타인의 질서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이 영화는 아주 조용하지만 강하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 작품은 그래서 성장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 허상을 꿰뚫는 철학적 은유이며,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깊이 있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