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씨부인전》은 조선 후기의 한문 고전소설로, 유교적 미덕을 지닌 이상적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내면에는 당대의 성별 권력구조에 대한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부덕과 정절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결말에 이르면 ‘죽음으로서 인정받는 여성’이라는 서늘한 조건이 드러나며 독자에게 불편한 물음을 남긴다. 이 글은 작품의 서사를 따라가되, 결말에서 감춰진 이중적 의미를 중심으로 분석하며 ‘누가, 무엇을 위해 이상을 설정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1. 이상적 여성상으로 포장된 삶
《옥씨부인전》은 조선 후기 유교 이념이 여성에게 기대한이상적 삶을 집약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옥씨 부인은 미모와 지혜, 정절과 인내를 모두 갖춘 인물로 설정되며, 여성에게 요구되는 수신(修身)과 내조의 덕목을 완벽히 구현하는 이상화된 존재다. 그녀는 남편이 과거 급제 후 장원으로 영광을 누리는 동안, 가문을 보전하고 자녀 교육에 헌신하며 자신을 낮춘다.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키고, 타인의 유혹이나 외부의 위협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분명히여성 미덕의 전형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삶이 스스로의 주체적 선택에 의한 것이었는가, 혹은 외부적 규범에 순응한 결과였는가 하는 문제다. 작품은 명확히 유교적 가치의 수용을 긍정하며 전개되지만, 그 내부에는 여성 주체의 갈등이나 질문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즉, 이상적 여성상이라는 외피는 결국 희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이며, 그 희생은 남성 중심 구조 안에서만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점이 드러나지 않은 갈등으로 잠재되어 있다.
2. 죽음, 칭송, 그리고 침묵의 딜레마
《옥씨부인전》의 결말은 눈에 띄게 상징적이다. 옥씨 부인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은 의로운 삶의 절정으로 칭송받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왜 여성의 삶은 죽음으로 종결되어야만 이상적이라고 평가받는가? 그리고 그 죽음에 부여된 찬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장면은 단순히 감동적 결말이 아니다. 작품이 설정한 모범 여성은 살아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 비극적 구조 안에 있다. 즉, 옥씨 부인의 삶 전체가 아무리 이상적이었다 해도 그 가치는 살아 있는 동안 현실 속에서 실현되지 않는다. 남편과 사회는 그녀가 죽은 뒤에야 눈물을 흘리고, 그녀의 미덕을 칭송하며 위대한 여성으로 역사화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여성이 생존한 상태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거나, 사회적 인정을 받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곧 여성의 주체적 삶은 제도적 언어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면에서 《옥씨부인전》의 결말은 유교적 미덕의 아름다움을 넘어, 여성 주체성의 결여와 죽음으로서만 완성되는 이상적 여성 서사의 근본적 모순을 보여주는 장치로 읽힌다.
3. 숨겨진 결말, 그리고 시대의 거울
《옥씨부인전》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그토록 이상적이고 위대한 여성으로 묘사된 옥씨가 자기 삶의 서사를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그녀를 영웅화하지만, 그 영웅성이 실제 사회에서 권력이나 자유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독자는 작품을 읽는 동안 그녀의 선택을 응원하게 되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의문을 품게 된다. 이 모든 미덕이 그녀를 행복하게 했는가? 아니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모되었는가? 결국 이 작품은 하나의 경고로도 읽힌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상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 이상이 죽음 이후에만 유효해질 수 있는 구조라면 그건 진정한 이상이 아니라 권력 질서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옥씨부인전》은 정절과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자율성을 희생시킨 시대의 거울이며, 동시에 우리가 지금 어떤 서사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만드는 중요한 고전이다.